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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아이시스 |
등록일 |
2008-01-29 13:05:02 |
조회수 |
380 |
# 피노키오
[1989년 12월 7일 밤 10시]
밤의 영역이 길어지는 겨울의 억세고 살결이 얼어붙는듯한 날씨.
마치 밤에 마주치는 검은고양이의 털색만큼이나 새까맣지만
흑진주처럼 깊게 빛나는 머리칼을 가진 소년이 옷깃을 여매며
몸을 움츠리고 빠르게 걷고있었다.
엷은 갈색빛이 도는 그의 안구와 겨울에 어울리는 새하얀 살결은
칠흑같은 머리칼에 대조가 될 정도이다.
그런 그의 자그마한 손은 걸치고있던 얇은 코트의 주머니에 꽂혀있었고
손목에 가볍지만 중요한 무언가가 들어있어보이는 비닐봉지가 걸려있다.
손은 주머니에 꽂아두었으므로 비닐봉지를 떨어뜨릴 일은 없겠지만
그에게는 아주 중요한물건인듯 걷다가도 멈춰서서 봉지의 존재여부를 확인하였다.
꽤나 귀찮은 일로 보였지만 그에게는 기쁜일인듯 엷은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갑자기 잊었던 무언가가 떠오른듯 그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종종걸음으로 걷던 그는 다시 곧 멈출수밖에 없었다.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한것은 새빨간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그의 얼굴에는 불안한 표정이 감돌았고 발은 동동 굴렀다.
짧은 시간이 흐른뒤에 빨간눈은 가도 좋다는듯 파란눈을 떴다.
소년에게는 한시간과도 같은 시간이었으리라. 조금이라도 빠르게 가기위해
소년은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뛰기 시작했다.
반정도 그곳을 건넛을까. 바닥이 마찰하는 찢어질듯한 소리가 소년의 귀에 내리 박혔다.
소년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익!!!!..
사람이 위험에 닥치면 상황판단능력이 떨어지는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몸집이 짐승같이, 짐승보다 더 커다란 그것은 그대로 소년에게 달려들었고,
여린 그의 몸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수미터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쾅!! 털썩..
그가 고이 지키고있던 봉지가 그의 몸에서 멀어지고 그와 동시에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바닥과 정면으로 맞부닥친 부분이 찢겨나갔지만 선명히 보였다.
녹색의 십자표시와 ○○약국
"꺄악!! 여기 애가 차에 부딪혔어요..!!"
"누가 119에 연락좀 해요! 빨리!!"
"꼬마야! 괜찮니? ..허억! 이런...출혈이 너무 심해요..!"
소년의 주변은 곧 아수라장이 되었고 평소의 그곳의 밤거리와는
다르게 사람과 그들의 말로 가득찼다.
1989년 12월 7일 밤 11시
- 응급실 -
"응급실 담당 레지던트!"
"이런..혈관을 확보해야해... 정맥주사..!"
횡단보도에서 차와 교통사고를 당한 소년은 응급실에 실려갔고,
곧 그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 둘이 허겁지겁 병원으로 들어왔다.
소년과 같은 색의 머리색을 가진 그의 부모들이 응급실 밖에서 불안한 눈초리로
서있었고 그의 엄마로 보이는사람은 매우 쇄약해보였다.
겉보기로는 소년과 함께 응급실에 실려가야 맞는걸로 보일정도로 그녀의 볼은
푹 패여있었고, 눈꺼풀엔 힘이 없었으며 살짝 벌리고있는 바싹마른 입술은
그대로 굳은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까지 소년의 손목에 걸려있었던 약봉지가 이해가 갈정도로 그녀의 얼굴은
산 송장같아보인다.
아빠도 건강한편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옆에 있는것만으로도 건강해보였다.
그는 불안해하는 자신의 안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히고는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몸뚱이는 힘없이 그의 가슴에 묻혔고 곧 그는 자신의 옷이 가슴에 달라붙는걸 느꼈다.
그녀의 쏟아지는 눈물때문에 젖어서그렇다는걸 알기에 그는 가만히 있을뿐이었다.
새벽 2시..
그렇게 둘은 오랜시간을 기다렸고 곧 소년을 담당했던 의사가 나왔다.
어두운표정으로 소년의 엄마,아빠를 번갈아보던 의사는 엄마의 상태를 대충
훑어보고는 소년의 아빠를 불러 응급실에서 약간 떨어진곳으로 향했다.
"보호자분 되시지요.. 이리로 좀.."
소년의 아빠와 의사는 오랜시간 대화를 했고 그의 아빠는 곧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1989년 12월 10일 아침 9시]
소년이 삼일만에 눈을 뜬곳은 2인용 입원실 1701호였다. 일어나자마자 그는
자신의 왼손에 따뜻하지만 슬픈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그의 아빠였다.
그는 자신의 아빠를 바로 깨우지 않았고 엎드려있는 그의 뒷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아빠가 꼬옥 쥐고있는 손은 빼지않고 그대로 둔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혼자있기에는 썰렁한감이 있는 넓은 입원실이었고 다른침대에는 엄마가 삐쩍마른
몸을 제멋대로 널부러져 잠을 자고있었다.
순간 소년은 어제의 일이 궁금해졌다. 큰 차의 라이트를 보고는 피하지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은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순간적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고 조용하게
보였다가 땅에 떨어지는순간 정신을 잃은것이다.
하지만 지금 소년은 하늘색 줄무늬가 그어져있는 환자복을 하나 덜렁 입고있을 뿐이었다.
그정도 사고라면 온몸에 붕대를 감아도 시원치않을텐데..
단지 가슴에 붕대의 감촉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조차 형식적인것으로 느껴질정도로 가슴쪽엔 고통이 없었다.
그런생각을하며 오른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으음....."
소년의 미세한 움직임에 깬 그의 아빠는 밤새 웅크리고있어서 찌뿌둥했던
몸을 일으키고 눈을 비벼댔다.
"아빠. 저 어떻게된거죠?"
소년은 보지못했다. 자신이 묻는순간 아빠의표정이 잠깐 어둡게 변했던것을..
그의 아빠는 소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아무일 없었어. 그냥 가벼운 타박상이래.."
미소는 짓고있었지만 기뻐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이제까지 본적없는 그런
아빠의 우울한 표정이기에 소년은 무언가 아빠가 자신에게 비밀로하는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대로 말해줘요."
"정말이야. 아빠 못믿어..?"
분명 소년은 그런 아빠의말에도 의심이 갔지만 어떠한 물증도 없었다.
정말 가벼운 타박상이었으니까.
그의 몸상태가 그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소년은 단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기로
했고 아빠의 말에 긍정하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소리에 그의 엄마도 잠에서 깼고 곧 마른몸뚱이를 빠르게 일으켜 소년의쪽으로 다가왔다.
"우리아들..내 예쁜아들...괜찮은거지?응? 어디 아프진 않고?"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고있다는걸 알기에 소년은 웃으며 고개를 활기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아픈 엄마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싶었을것이다.
"응.나 괜찮아요 엄마. 괜찮데, 나.. 아빠가 그랬어."
"미안해.엄마가 미안해......"
두사람은 말이 끝나자마자 포옹을 했다.
아빠는 슬픈표정으로 자신의아들을 바라보기만했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곧 간호사가 들어왔기때문이다.
"몸은 좀 어떠세요?"
무표정한 얼굴로 형싱적인 멘트를 날린후 간호사는 소년의 팔뚝에 주사를
한대 놓고는 퇴원수속을 밟아도 된다는 말을 한뒤에 입원실에서 나갔다.
[1990년 2월 3일 오후 1시]
그 사고가 일어난지 거의 두달이 흘렀다. 그동안 소년의 몸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소년의 엄마도, 소년의 아빠도 더이상 그 사건을 다시 생각해내지 않았고
그럴필요도 없었다.
서서히 그 사고는 그들의 기억에서 없어져가는듯 싶었다.
하지만..
그 일은 소년의 아빠가 외출을 한, 어느 일요일에 발생했다.
집에는 소년의 엄마와 소년 뿐이다.
"엄마. 이상해요.."
아들의 말을듣고 송장처럼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있던 소년의
엄마가 이불을 살짝 내린후 대답했다.
"뭐가..?"
"저번 사고이후로 몸이 뻑뻑해지는것같아요."
"..무슨소리니?"
"그니까.. 몸이 말도 잘 안듣고.. 여튼 한걸음 한걸음 걷기도 힘이부쳐요.."
소년의 엄마는 60먹은 노인내처럼 말하는 자신의 아들이 이해가 가지않았고
단지 사고후에 잠깐 일어나는 후유증이라고 생각했고 별로 그 일이 대수로워보이지않았다.
"곧 괜찮아질거야."
"그렇겠죠..?설마 나빠지진 않겠죠?"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대화를 외출후 귀가한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다.
[1990년 2월 4일 새벽3시]
"허억..헉..헉.....어..엄마..아빠......."
불이 꺼진 방안에서 소년이 애타게 자신의 부모들을 찾았다.
소년의 새하얀 피부는 마치 나무처럼 살결이 갈라져있었고 그 사이사이에서는
칼에 벤것처럼 피가 서서히 새어나왔다.눈꺼풀은 잘린것처럼 안면피부와 영역이
확실히 표시가낫다.
게다가 눈동자는 눈구멍만 더 컸다면 갈색빛의 그 눈동자를 손으로 집어
꺼낼수도 있을것같은 재질이었다.
절대 그것은 보통 사람의 미끄덩한 안구가 아니었다.흡사 플라스틱같았다.
눈뿐만이 아니라 몸전체가 기괴하고 끔찍한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의 평범하면서 특이한 색이 아니었더라면 그가 얼마전의 그모습이었던게
상상이 안갈정도로..
그런모습으로 소년은 힘겨워하며 엄마,아빠를 연신 불러댔지만 그 소리는
바로옆에 누워있어야만 알수있을정도로 작았다.
그런소리를 그의 부모들이 들을리가 없었다.
스스로 움직일수도 없었다.
손끝,발끝을 조금씩 꿈틀댈수는 있었지만 몸을 일으킨다는건 지금 소년에게는
상상도 안갈일이다.
소년은 자신의 끝을 느낀듯 했다.
마치 그때 몸뚱이의 고통을 미뤄놓고 지금 한꺼번에 받고있는것같았다.
갑자기 소년의 껌뻑이던 눈커풀이 껌뻑임을 멈추었고
눈커풀은 서서히 녹아 사라지듯 없어져갔다.
그 순간. 소년의 플라스틱같이 변한 눈동자가 앞뒤로 '두루룩..두루룩..'구르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눈꺼풀없이 눈동자를 두루룩..두루룩..굴리는
그의모습은 죽기 직전의 몸부림처럼보였다.
살에서 새어나오던 피도 이젠 그 끝을다한듯 나오지 않았고 몸뚱이는
사시나무 떨리듯 딱딱딱딱 떨렸다.
이제 누군가를 부를 힘도 남아있지않은듯 그는 서서히 움직임을 멈춰갔다.
그리고 구르던 눈도, 떨던 몸도 모두 멈추었고 그는 피가 가득고인 바닥위에 그대로 굳은듯 ....
움직이지않았다.
그의몸은 결국 모든 피를 토해내고 싸늘한 시체가 아닌 딱딱한 무언가로 변했다.
[1990년 2월 4일 아침 7시]
출근을 위해 맞춰놓은 알람시간에 잠을깬 소년의 아빠는 아픈 자신의
아내를 슬픈표정으로 내려다보다가 학교에 가야될 아들을 깨우기위해
그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분명 그의 아들이.. 잠들어있어야할 공간이었는데 그의 눈앞에는
한 목각인형이 피로물든 빨간 바닥에 가만히 누워 눈을 부릅뜬채 자신의
방향을 노려보고있었다.
한치의 움직임도,미동도 없이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곧 그의 무릎은 '털썩!'하고 바닥과 부딪혔고 자신의 아들형상을 한
목각인형을 향해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그의 주먹은 쉴세없이 바닥을 쿵!쿵!하고 내려쳤다.
[1989년 12월 7일 새벽 2시]
미간에 주름이 살짝 진 의사는 턱을 괴고는 한참을 말없이 소년의 아버지를
바라보기만했다.
그런시선이 무안했던지 그는 헛기침을 했다.
"흠..흠...."
의사는 헛기침의 의미를 알았다는듯 입을 천천히 열었다.
"보호자분 아드님은 오늘이 고비입니다. 그리고, 오늘 고비 넘기기 힘들겁니다."
그의 첫마디는 단호했다.
소년의 아빠는 그말을 듣는순간 망치로 세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라구요?"
"보호자님 심정 이해합니다.."
소년의 아빠는 의사의 멱살을 거칠게 잡고는 말했다.
".......당신이 뭘 이해한다는거야....!! 내아들..내아들 살려내..당장!"
아마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닐것이다. 아들을 잃고나서 제정신을 차릴수있는
부모가 얼마나될까.
그는 갑자기 손을 떨며 의사의 멱살을 놓고서는 무릎꿇고 애원했다.
"제 아들만 살려주세요..제발 제 목숨을 내놓아도 좋습니다..제발..
그애는 제 보물이에요.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제가 아는 영매사가 있습니다."
"영..영매사라뇨..의사선생님. 그사람이 제 아들을 살릴수 있는겁니까?!"
"글쎄요.......못믿으시겠지만, '인형'에 영혼을 빙의시킬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의사말대로 믿을수없는소리였다. 말장난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의사의 눈에는 진실이가득차있었다. 적어도 소년의 아빠에게는 그래보였다.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그는 의사의 손을 낚아채 꼭 잡으며 말했다.
"뭐든.. 하겠습니다."
"내일 밤 제게 찾아와주십시오. 영매사님께 미리 연락해놓겠습니다."
[1989년 12월 8일 밤 9시]
그는 마룻바닥을 왔다갔다하면서 매우 불안한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지금 하는짓이 잘하는짓인지 확신도 서지 않았지만, 이방법 저방법
가릴때가 아니었다.
그냥 두었다가는 사랑하는 외아들을 그냥 아무일도 못해보고 보내야만 하니까.
영매사....
낯설고 익숙치않은 이름이었다.
그자는 대체 누구길래 그의 아들을 살릴수 있는걸까? 단순한 사기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의사가 자기같은 평범한 남자를 상대로 그런 바보같은짓을 할리가 없
었다.
그들이 원하는게 돈이 아니고 다른것이라면 모를까..
밖이 까맣게 어두워진것과 자신의 아내가 눈을 감고있는모습을 보고 소년의
아빠는 병원으로 향했다.
- 끼익..
"안녕하세요.선생님.."
"네. 어서오세요.. 제가 말씀드린 영매사분이십니다."
의사의 곁에는 키가 매우작고 외소한체격의 처음보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쉴새없이 기침을 해대고있었다.
"아..예. 안녕하세요. 성함이.."
그 남자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기침을 하다가 그의 질문에 눈알의 움직임을 멈추고
대답했다.
"김석호라는 ..쿨럭, 이름을 쓰고있습니다만...하하.."
'이름을 쓰고있다..?'
"그게..무슨..... 본명이 아니라는 얘깁니까?"
"아뇨..뭐... 쿨럭.. 일단 상관없는얘기는 ..쿨럭..집어치우고.. 아드님걱정부터 하셔야 할
것같군요...쿨럭."
그러고보니 저쪽구석에 하늘색 천이 쳐진 무언가가 있었다.
김석호라는 사람이 그쪽으로 다가가 천을 치우고나니 소년의 모습을 하고있는
인형이 누워있었다.
"저게 뭐죠?"
김석호는 살짝 웃으며 답했다.
"아드님 영혼을..쿨럭. 빙의할 인형이지요.."
"저런것에 영혼을 빙의한다면 저모습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는것 아닙니까?"
"쿨럭..하하.. 아닙니다..쿨럭.. 비록 모습은 평범한 인형이지만 ..쿨럭....."
그는 기침을 너무많이해서 가래가 끓었는지 쓰레기통으로 어기적 어기적 다가가
침을 '퉤' 뱉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직접 해보는게 가장 좋을것같네요..쿨럭....크응.."
"의사선생님. 제 아들은 어떻게된거죠?"
그의 물음에 의사와 김석호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만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쿨럭, 준비되어 있지요..."
저 두마디로 그는 충분히 상황을 머릿속에 그릴수 있었다.
그의 아들은 결국 죽었고, 그의 죽음으로 영매사에게는 영혼이 준비된것이고,
시행만 남았다는것..
"어서..해주십시오."
"하기전에 주의하실것이 있습니다..."
"뭡니까?"
"매일 자정에 제가 드리는 약을 아드님께 꼭 먹이셔야합니다."
"쉽군요. 하지만 이거 가능성이 있는건가요?"
"두고보십시오..후후..쿨럭.."
"제 아들이 살아난다고 해도..대가 지불이 걱정이네요. 얼마나 드리면 됩니까?"
김석호는 번뜩이는 눈을 잠깐 날카롭게 뜨더니 이내 평온한표정으로 바꾸고는
말했다.
"저는 됐습니다. 정 주실거면 이 의사양반한테나 주십시오..쿨럭!"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반문했다.
"정말입니까?"
"그럼요.. 쿨럭!그렇다고 제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건 아니니까요..."
김석호는 알수없는 말을 중얼대고는 소년의 아빠와 의사를 밖으로 내몰았다.
"자자.. 시작하겠습니다... 두분 다 나가주세요....쿨럭! 안은 되도록이면 보지
않으시는게 좋을겁니다..쿨럭.."
[1990년 2월 4일 아침 8시]
한시간째 그는 자기 '아들이었던' 인형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인형도 그를 노려보고있었고 둘은 그렇게 오랜시간 눈을 마주치고있었다.
곧 그의 엄마가 잠에서 깨고 방으로 다가왔다.
"여,여보.....이게뭐에요 대체?"
그녀는 믿을수없다는표정으로 방으로 다가가 끈적한 피에 젖은 인형을
사람을 다루듯 등을 받치고 일으켰다.
"어디서 난 인형이에요?"
"...이라고.."
그는 초점없는 눈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을 제대로 못들은 아내는 다시 물었다.
"뭐라구요?"
"..우리........이라고.."
"크게좀 말해봐요!"
답답함에 그녀는 그에게 신경질을 냈다. 그는 갑자기 몸을돌려 그의 커다란 손
바닥으로 그녀를 세게 후려치고는 말했다.
"니가......그리고 내가죽인.. 우리가죽인..!! 우리 아들이라고!!!!"
그녀를 세게 후려친 그였지만 눈에선 아직도 쉴새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는 울긋불긋하게 부어오른 볼을 부여잡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소리에요 여보..농담하지 말아요..네?"
"크아아아아아아악!!!"
그는 크게 소리지르고는 주저앉아있는 아내의 멱살을 잡고 일으키더니
방구석으로 내몰아쳤다.
살덩어리 한점 붙어있지 않았던 그녀의 가벼운 몸뚱이는
쉽게 일으켜졌고 쉽게 밀쳐났다.
-쿵!
"꺄아악..! 여보..제발정신차려요.대체 왜이래요.."
- 쉬익- 빡!
[1990년 2월 4일 오후 2시]
" 띠리리리링.. ♬ "
그의 전화벨은 여전히 쉴새없이 울렸다. 하지만 그는 받을생각이 없어보였다.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가 분명하기때문이겠지..
그는 자신의 품에 아내를 꼬옥 안고는 자신의 아들이 인형이되어 누어있던
그방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분명 오전에만해도 그녀는 이성을 잃은 그의 억센 주먹에 치이고 또 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맞아서 피떡이 된 얼굴로 그의 품에 안겨있다.
..꽤나 언밸런스한 모습이다.
그는 그포즈 그대로 아내에게 모든것을 말했다.
..
..
..
"...그렇게 된거야.."
입가에 피로 딱지가 져 잘 열리지않는 입으로 아내가 말했다.
"믿을수 없어요... 그런데 여보."
"응?"
남편을 부르고나서 얼마간 그를 응시하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당신 외출했을때.. 몸이 뻑뻑하다고 했어요."
"뭐라고?...."
아내의 말을 듣고난 그는 한참이나 넋이 나간표정으로 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인형화되어가고있었던 것이다.
분명 소년에게 자정에 하나씩 김석호가 준 약을 먹였었다. 그런데 왜 인형화가
진행된것일까?
그가 넋이 한참 빠져있는데, 그의 아내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인형이 되어가고 있던거였군요?..그런데 저도 요세 몸이 뻑뻑하네요.."
자신의 남편에게 충격을 준 말을 내뱉고 난 아내의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흘렀다.
"왜죠? 저는 어째서.. 몸이 뻑뻑해져가는걸까요. 저도 언젠간 저렇게 딱딱한
목각인형으로 변하는건가요?"
아니다..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그가 안고있는 그녀의 인형에 집어
넣은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제까지 잘 살아온 그녀가 아닌가.
"아냐..그럴리없어.."
그는 휑한 눈으로 아들이 잠깐 '들어갔었던' 목각인형을 손으로 들고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 쿠당탕탕..!
그러더니 이내 신발을 급하게 신고는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그런 그의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조용히 딱딱해져가는 자신의 몸뚱이를
주무르고있었다.
[1990년 2월 4일 오후 2시 40분]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간 그는 자신에게 김석호를 소개시켜준, 자신의 아들을
살리지 못하고 죽여버린.. 담당 의사에게 향했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차있었으며 이성을 잃은듯 눈에는 핏발이 시뻘겋게 서있다.
- 끼이잉..
병원의 무거운 문을열자 평소엔 들리지 않던 듣기싫은 마찰음이 울려퍼졌다.
이상하게도 병원에는 인척하나 없다.
심지어 분주하게 복도를 걸어다니던 간호사들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런것을 신경쓸 여유가 없다.
- 벌컥!!
역시 그곳에는 담당의사가 있었다. 그곳은 바로 전에 김석호와 의사,그리고 그가
한자리에 모였던곳이다.
의사라는 작자는 기다렸다는듯 책상에 팔을괴고 깍지를 낀채 문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래서 그는 문을 열자마자 담당의사와 눈이 마주쳤다.
의사는 그의 핏발선눈을보자 우습다는듯 피식웃었다.
"무슨일입니까?"
"어떻게된일인지 설명해...!!당장!!!"
"뭐가말이죠..?"
그는 숨이 목끝까지 차고 올라올정도로 뛴탓에 헉헉거리며 숨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말을 이었다.
"...김석호라는인간이 준 약을 자정에 먹였어.. 하지만 내 아들은 인형이되버렸어..!!
바로 그때 본 그인형말이다.....그리고 ..내 아내... 인형이 되가고있어. 인형이 된
아들과 증상이 똑같아..! 어떻게된일이냐고!!!"
그는 옆에있던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를 들어 바닥에 내리찍었다.
-텅..!!
그런 그의모습을 아무말없이 지켜보던 의사가 말했다.
"저는 잘 모르겠군요..김석호씨를 불러드리죠."
의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문뒤에 서늘한바람이 느껴졌다.
그가 놀래서 뒤를돌아보니 체구가 외소한 그가 서있었다.
김석호.
갑자기 들이닥친 김석호를 놀란듯 쳐다보다가 그는 의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고개를 돌린 그와 눈이 마주친것은 의사가 아니었다.
의사의 흰색가운을 입은 딱딱한 목각인형....
그것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으...!"
그는 뒷걸음질치며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뒤돌며 소리쳤다.
"당신..당신대체 누...!!"
그는 곧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걸 느끼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1990년 2월 4일 밤9시 40분]
"......으음....음....."
그가 눈을 떴을때는 이미 밤이었다.그리고 입이 답답했다.
'맙소사!'
그의 옆에는 자신과 같이 아내가 입에 청테이프가 붙여진채로 똑바로 누워있었다.
그녀의 손끝과 발끝은 꿈틀거리며 움직이려 애썼지만 그것이 전부로 보였다.
'여...여보!'
어서 아내의 입에 붙여진 테이프를 떼어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은 그였지만
몸이 말을듣지않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이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몸을 밧줄로 수백바퀴는
감아둔것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지금 자신은 아내의옆에 누운채 눈알만 굴릴뿐이었다.
금방이라도 일어서서 아내를 부축해 집으로 돌아갈수있을것같은데.. 팔하나 까딱
하지 못하는 자신이.. 그럴 힘조차 나지않는 자신이 증오스럽다.
지금 아내는 저렇게 바로옆에서 고통스러워하고있는데.....
그때였다.
"일어낫나보군...쿨럭.."
저 목소리..김석호가 분명하다.
"읍..읍읍!!"
온힘을다해 테이프밖으로 비명을 내뱉으려고했지만 그의 입에서는 모기마냥
앵앵대는 신음소리밖에 나오지않았다.
김석호가 저벅저벅 그가 있는쪽으로 걸어와 테이프를 쭈욱 잡아뜯었다.
따끔한기분과 함께 그의입은 어느정도 답답함이가셨다. 하지만 김석호는 아내의
입에 테이프는 떼지 않았다.
"내 아내도.. 저테이프..제발 떼내줘.."
"어짜피 당신들은 ..쿨럭! ...곧 인형이 될것입니다.."
"뭐라고..?"
"아. 당신의 아내는 이미 시작되었군요.."
김석호의 말에 그는 눈알을 아내쪽으로 돌렸다.
이럴수가.. 아내의 피부조직이 갈라지면서 피가 새어나왔다.
아니, 이미 피가 새어나오는 부분은 피부가 아니라 통나무처럼 딱딱해보였다.
"당신.. 이런짓을 하고도...무사할줄알아..!! 당신은...내인생을 망쳤어....."
"인생이라..푸훗.."
- 딱딱딱딱딱...
나무가 꺾이는듯한 기괴한 소리가 낫다.
그는 반사적으로 눈알을 아내쪽으로 돌렸다..
차라리 보지 말것을..아내는 그의옆에서 몸을떨며 이상한 소리를 내다가 결국
인형이 되었다.
'나의 아들도..저렇게 고통스럽게 갔겠지..나도 곧...그들이 있는곳으로 가겠지....'
그는 체념한듯보였다. 그리고 얼마안가 그도
피를 배출해내고,
통나무가 되는 몸을 떨고,
눈알을 '두루룩'굴리며
목각인형이 되었다.
"휴우..드디어 이번일도 성공적으로 끝냈군.."
[1990년 2월 4일 밤 11시]
김석호가 자신의 앞에놓인 목각인형 두개를 바라보다가 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는 밖에다 대고 말했다.
"끝났습니다..! ..쿨럭..! 들어오셔도 괜찮아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많은 기자들이 문을 뚫고 쏟아지듯 들어왔다.
"이번사건도 수고 많으셨어요."
"이번일은 어떠셨습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자세히좀 말씀해주세요!"
"김석호씨. 잠깐 인터뷰좀 부탁드릴게요."
기자들의 쏟아지는 말과 질문에 '퇴마사'김석호가 씨익- 웃으며 대답한다.
"이번일은 좀 힘들었습니다.. 하하.. 세개의 인형이 자신들이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는바람에...."
피노키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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